정보공개로 예산감시운동을 수십년간 하고 있는 이상석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보공개청구 깨나 하고, 예산결산 좀 볼 줄 안다는 사람들에겐 무림의 고수 같은 분이죠. 최근에는 ‘세금도둑 잡아라’ 라는 단체를 만들어 홍준표 특수활동비 유용에 대한 고발인단을 모집하기도 했는데요. 그가 얼마 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치단체나 자치단체장들이 비리라는 콩을 아스팔트에 뿌리고 다니는 거라면 우리가 하는 일은 쇠젓가락으로 그걸 줍는 거예요.”

평생 젓가락질을 해서 삼시세끼 밥을 먹은 우리지만 쇠젓가락으로 바싹 마른 콩을 집는 일은 막상 해보면 쉽지 않습니다. 눈도 침침하고, 어깨도 아프고, 무엇보다 생각대로 안 돼 짜증이 나지요. 1,000쪽에 달하는 예산서와 결산서를 들여다보고,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운이 좋으면 영수증이나 회의록 한뭉치를 공개받고, 또 다시 그걸 들여다보는 일은 그의 말마따나 딱 쇠젓가락으로 콩 집는 격입니다. 생각보다 어렵고 지난하며, 성과 역시 쉬이 나지 않습니다. 콩 집는 일에 뭐 그리 열을 올리냐는 얘기나 들을지도 모를 일이죠. 

간혹 비리의 냄새가 나는 건을 파헤치기 위해 정보공개 문의를 해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이 정보공개운동을 하는 곳이다 보니 공개의 맥을 탁 짚어서 바로 원하는 자료를 받아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내비칩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제일 먼저 권하는 것은 관련 건에 대한 1년치 남짓의 정보목록(방대한 양의 수발신 공문 대장), 예산서와 사업설명서 검토 입니다. 사안과 직접적 연관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 일을 마치고 나면 그제서야 정보공개청구를 하라고 하지만, 그 마저도 비공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몇 달에서 몇 년까지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다 거쳐 비리를 파헤치는 일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난한 그 과정을 견디다 중간에 포기하기도 하고, 애처에 시도를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쇠젓가락으로 콩을 집는 심정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예산을 감시하는 일은 더욱 필요하고 소중합니다. 권력이 제멋대로 비리를 저지르지 못하고 누군가의 눈치를 본다면 그 첫 번째는 바로 쇠젓가락을 든 이들일겁니다. ‘짬짜미 예산집행을 저 사람은 끝내 들추고야 말겠지’ 이 생각이 들면 세금을 제멋대로 쓰고, 행정을 졸속으로 처리하는 게 마음 편치 않을테니까요. 

이런 이들은 전국 곳곳에 있습니다. 서울이나 정부 전체를 상대로 감시하는 이들도 있고, 군이나 구, 동네에서 감시활동을 하는 이들도 있지요. 어디가 더 크고 힘들다 저울질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일을 하는 데는 동네가 더 힘이 듭니다. 같은 동네에 살다보면 학연 지연 혈연에 자유롭기가 어렵고, 금세 아는 사이 이웃관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비리 사실을 들춰낸다 해도 같은 이유로 그 일이 퍼지기 쉽지 않죠. 

은평에도 이런 이들이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고 떠벌릴 시간에 묵묵히 쇠젓가락으로 비리의 콩알을 하나하나 줍는 이들 말이죠. 그 지루하고, 피곤하고, 때로는 외로운 일을 하는 그들에게 응원과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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