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소프트파워 외교의 서막: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하고 있다.(사진 = 게티이미지 코리아)

국제 스포츠 무대는 실력을 겨루는 승부의 장,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전후로 세계는 미국 자유진영과 소련연방 공산주의로 양극화돼 긴장 상태가 지속됐었다. 소련 쿠바 미사일 기지화 시도는 자칫 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 그러던 와중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1969년 베트남전 철수를 골자로 한 '닉슨독트린'이 발표됐다. 이후 긴장 정세가 완화(데탕트)되면서 세계평화가 찾아왔다. 그 관계 개선 중심에는 소위 '핑퐁외교'라 불리는 소프트 외교 전략이 한몫했다.

이번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 하키 단일팀은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올림픽 사상 최초의 남북단일팀이었다. 물론 아이스하키 종목 같은 팀 스포츠는 급조된 단일팀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기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IOC가 권유하고 반대 여론이 있었음에도 정부가 단일팀을 밀어붙였던 이유는 이번 단일화 노력이 평화 올림픽 정신을 드높이고 남북 화합을 도모하는 초석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역대 정권에서도 남북단일팀 시도는 꾸준히 있어왔다. 물론 실제 성사된 것은 탁구와 축구가 유일하다. 그중 1991년 일본 치바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한 남북 탁구단일팀은 가장 극적인 스포츠 드라마로 회자된다. 당시 남북단일팀은 탁구계 무적함대로 불리는 중국과 우승을 놓고 맞붙었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이 잘 그려지지 않아 영화 <코리아>(감독 문현성)를 봤다. 이 영화는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남북 탁구단일팀에 대해 남북 선수들의 거부감 및 반발, 반세기 동안 분단된 데 따른 생활습관, 사상, 어투의 차이로 인한 선수 간의 대립과 갈등을 그럴싸하게 묘사하는 데 성공했다. 

허구임에도 심적으로 동하는 부분이 많았다. 모든 스포츠 단체전은 팀워크가 관건이라는데 환경이 달라진 남북선수가 새로운 파트너를 맞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 급조된 과정에서 기존 선수들이 얼마나 부담감을 가졌을지 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여자 단체전에서 중국을 꺾고 남북단일팀이 금메달을 딴 것이다. 분단된 한반도가 합쳐질 때 발생하는 시너지에 남북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비현실적인 남북 탁구단일팀 우승 실화는 이념으로 분단된 한민족의 아픈 역사를 잠시나마 어루만져줬다. 

영화에서 하지원(현정화 역)은 "한국에서 살 생각은 없느냐"라고 배두나(리분희 역)에게 물었다. 배두나는 "잘 사는 기준으로 보면, 너는 미국 가서 왜 살지 않니"라는 뼈 있는 말로 받아쳤다. 

닉슨 미 대통령은 중국과의 긴장완화를 위해 그들을 이해하고 배우려 노력했다. 그래서 탁구도 제안한 것은 아닐는지. 분명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3대 세습 독재정권 기반의 북한식 공산주의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몰락한 지 오래다. 반면 동일한 조상과 언어를 공유하고 있는, 전 세계 유일의 한민족인 북한에게 어쩌면 우린 너무나 무관심했던 것은 아닐는지.

우리는 미·일·중·러 강대국 틈바구니에 껴있다. 북한은 끊임없는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 안보를 흔들어대고 있다. 냉전시대 못지않은 긴장된 분위기 속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스포츠는 남녀노소가 생활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인 동시에 이념전쟁을 누그러뜨리는 훌륭한 외교 도구다. 남북 여자아이스 하키 단일팀의 단일화 과정은 분명 매끄럽지 않았다. 시합 내용면에 아쉬운 면도 일부 존재한다. 그러나 평창에서 남북 선수단이 보여준 투지와 종료 휘슬이 울린 후 서로 부둥켜 위로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큰 감동이었다. 

영화 <코리아> 말미, 배두나(리분희 역)가 "여기까지 왔네"라며 결승시합 전에 감격해할 때, 하지원(현정화 역)이 한마디 거든다. "여기까지란 말은 없어, 지금부터야." 

남북 여자아이스 하키 단일팀은 5전 전패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이제부터 시작인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평창올림픽 남북단일팀은 이제 새 역사를 써나갈 것이다. 소프트파워 외교의 중요성을 잘 인지하고 있는 새 정부 통일정책에 기대감이 커지는 연유다. 1991년 남북 탁구단일팀의 명맥을 이은 2018년 남북 여자아이스 하키 단일팀의 선전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벌어질 또 다른 감동의 드라마를 기대한다. '지금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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