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로 일하는 공무원. 정보공개 답변으로 기록없다는 답변받으면 의심해봐야”

몇 해 전 경찰이 조준해서 쏜 물대포에 맞은 한 농부가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경찰의 물대포 살포를 두고 지침을 어긴 다분히 고의적인 과잉진압이라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경찰이 30분 단위로 작성하는 ‘상황속보’를 봐야 했지만 경찰은 이 문서를 “백남기 농민이 사고를 당한 시각에는 작성하지 않았다”고 했다가 “파기했다”고 말을 바꿔가며 해당 문서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기록이 없으니 하고 싶어도 공개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기록이 없는 건 당연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경찰은 이 변명으로 인해 자신들의 범죄혐의만 더 추가했을 뿐입니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기록물'을 "공공기관이 업무와 관련하여 생산하거나 접수한 문서·도서·대장·카드·도면·시청각물·전자문서 등 모든 형태의 기록정보 자료와 행정박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집회 때 작성한 상황속보는 당연히 업무와 관련되어 생산된 문서이기 때문에 이 법에서 정한 기록물입니다. 

법에는 기록물을 폐기하기 위해서는 기관 내외부 전문가들의 심사를 통해서만 할 수 있도록 절차를 정해두었고 혹여라도 기록물을 무단으로 파기했을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공무원은 문서로 일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업무의 모든 것을 남겨두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공무원이 기록이 없다고 말하는 건 몹시 이상한 일입니다. 기록이 없다는 정황이 무단 파기처럼 합리적이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기록이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닙니다. 왜 기록이 없는지, 무얼 숨기거나 감추려고 하는 건 아닌지 꼼꼼히 살펴봐야 합니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벌어진 뒤 일본에서 많은 수산물을 수입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피폭의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시민의 요구로 유치원과 학교에서는 급식에 수입수산물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교육시설이 아닌 어린이집 등은 단체급식을 하고 있지만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였습니다. 사실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도 추정일 뿐 그 내용을 확인조차 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어린이집도 당연히 급식에서 수입수산물이 제외되도록 공공기관이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 시민들은 서울의 모든 구청에 ‘어린이집별 수산물 납품업체 현황’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습니다. 수산물의 수입 여부 정도는 구청이 관리하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갖고 있던 시민들에게 정보공개 답변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정보를 공개한 곳은 단 세 곳 뿐 이었고 나머지 22개 구는 모두 해당업무를 구청이 하지 않아 정보가 없다는 답변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정보가 없다’는 구청들의 답변은 결과적으로 어린이집을 포함한 급식에서 수입수산물을 금지하도록 하는 데 기여를 했습니다. 공공기관이 하지 않고 있는 일을 드러내 일을 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공무원은 문서로 일을 한다는 말을 했는데요. 이 말을 달리 보면 문서가 없다는 것은 일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을 했는데 정보가 없을 리 없기 때문입니다. 정보가 없다는 건 몹시 이상한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나 공공기관이 해야 하는 일이고 역할이라고 하는 일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가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닙니다. 만약 정보가 없다고 한다면 그 정보를 만들 수 있도록(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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