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 미터가 넘은 높이에 드넓고 비옥한 토지가 있는 나라. 6천 미터 높이의 설산을 일년 내내 볼 수 있는 나라. 사막과 오아시스가 있는 나라. 연중 강수가 거의 없어 지붕은 햇빛과 먼지를 막을 정도로 얇게 덮은 곳이 있는 나라. 그래서 천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자갈 위에 새긴 그림이 그대로 남아 있는 나라. 불의 고리와 확실하게 연결되어 지진과 화산이 많은 나라. 그런데도 수 천 년 인간의 문화를 간직해 온 나라. 페루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페루 잉카 유적의 메카 쿠스코에서 110여 킬로 떨어진 곳에 락치(Raqchi) 유적이 있다. 신전으로 추측한다. 잉카인들이 믿었던 창조의 신 비라코차를 모신 곳이라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은 신전의 중심 기둥과 곡식창고, 집터와 수로다. 기둥 밑면은 쿠스코의 그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돌을 쌓았고, 위로는 짐승의 털이나 사람의 머리카락을 흙에 개어 쌓았다. 높이가 92미터나 된다. 

이 구조물 양편으로 낮은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에 삼각형의 지붕을 얹었다. 스페인 군대의 침공으로 파괴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는데, 지난 몇 번의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지면에 쌓은 정교한 돌담이 버텨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잉카의 후예들은 카톨릭으로 개종을 했지만 아직도 그들의 신을 잊지 않고 있다. 마침 끝난 락치시의 선거에서 당선된-시장이라는데- 일행이 제사장인 듯한 사람을 앞세워 이 유적지를 빙 돌았다. 연기가 나는 향로를 흔드는 전통 복장을 한 잉카의 후예 뒤로 넥타이를 맨 사람이 뒤를 잇고, 또 그 뒤로도 행렬이 이어진다.

혼통 하늘을 뒤덮은 구름 아래 빛나는 햇빛 속 락치 신천의 기둥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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