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기준과 구조에 저항

“작가의 의도가 따로 있는 건데, 꼭 그렇게 비판적으로 봐야 합니까?”

짜증 섞인 질문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단호하게 대답했어요.

“네. 이제는 천재적인 작가가 영감을 받아서 대단한 무언가를 그려서 짠! 보여주면, ‘와, 역시 멋지다!’고 감탄하며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에요. 관객이 주체가 되어서 자신의 관점으로 작품을 대하고 느끼고 비평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2018년이니까요.”

불만과 의심과 호기심이 섞인 눈빛으로 집중해 듣던 그 분은 강의가 끝나자 고백을 해왔습니다, 그 ‘위대한’ 작품들이 어떤 관점으로 그려진 것인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요.

저는 미술작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미술가들과는 다르게, 이십대 후반에서야 미술을 전공하게 된 제 눈에는 ‘유명한’ 작품들에 이상한 점이 많았어요. 여성들을 인격체가 아닌 성적 대상물로 그려내거나 일부 사람들만의 시선을 기준으로 하는, 매우 편협한 세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요즘은 과거의 서양미술에서 여성을 재현하는 방식이 현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리는 활동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우리에게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고 학습된 이미지들이 사실은 ‘백인’, ‘남성’, ‘귀족/자본가’, ‘지식인’, ‘이성애자’, ‘비 장애인’, ‘비 청소년’ 등 권력의 교집합에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의 시선이었다는 것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것 같아요. 서양미술의 보는 방식이 현대의 대중매체에 고스란히 이어져 왔고, 우리들의 인식과 가치관에도 큰 영향을 주었는데 말이죠. 

작년에 ‘외모지상주의’를 주제로 한 전시에서 거울을 보고 자화상을 그리면서 함께 이야기 나누는 관객 참여 작업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참여자들이 자신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려워한다는 것이 너무 슬펐어요.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이고, 역사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 얼굴에 남아있는 소중한 흔적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부정되고 감추어야 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개인의 힘으로 자신을 온전히 인정하고 긍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한 예이지요.

가부장제 사회의 규범과 질서는 모두 소수의 남성 권력자가 만들었기 때문에 여성은 남성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게 되요. 남성이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보듯이 여성이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며 대상으로서 보게 되기 쉽죠. 주체이면서 대상으로 분열된 자아를 가진 여성들은 다른 여성을 주체로 인정하기보다 또 다른 대상으로, 경쟁자로 인식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여성들이 그 분열의 고통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 인식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산소 같았던 성차별과 젠더 권력을 볼 수 있게 되었고요. 힘이 없는 사람들이 거대한 불의와 싸울 때는 연대가 필요해요.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지정된 성별의 틀 안에 자신을 가두지 말고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기준과 구조들에 저항하고 싸우면 좋겠어요. 지금은 신분제 사회도 아니고 식민지 시대도 아니고 바로 2018년이니까요!

*필자 소개

- 16년째 연애 중인 비혼, 개엄마, 여성주의 현대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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