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를 잘 받으려면 3

제가 요즘 은평시민신문에 ‘진료를 잘 받으려면’이라는 칼럼을 마치 연재기사라도 되는 것처럼 쓰고 있는데요, 오늘은 진료를 잘 받기 위해서 알아야 할 ‘VIP 신드롬’을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VIP 신드롬은, 의료기관에서 직원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인데요, 공주병이나 왕자병처럼 ‘실제로는 아닌데 자기 스스로를 VIP라고 착각하는 병’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잘해드리고 싶은데, 계속 일이 꼬이는 상황’ 정도라고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요. 의료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의료진의 실수는 치명적인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히 주의하여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 한 사람의 실수를 다른 사람들이 커버할 수 있도록 2중 3중으로 체크하는 시스템을 마련해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결국 모든 의료는 ‘팀플레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약간의 긴장은 사람이 실수없이 더 일을 잘 하게 만들 수 있지만, 만성적인 긴장이나 극도의 긴장·불안·부담감 등은 오히려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일할 때 ‘교수님의 어머님’, ‘대기업 회장님’ 같은 환자분들이 입원을 하시게 되면, 병동의 모든 의사와 간호사들이 긴장하여, 안 하던 실수도 하고 서로 잘 하려다 보니 손발이 꼬이곤 했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이런 상황을 가리켜 ‘VIP 신드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더 잘 해드리려고 하다 보면 통상적으로는 문제없이 진행하던 일들에서 치명적인 실수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 VIP 신드롬은 수술이나 중요한 검사가 있는 대학병원 같은 곳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일하는 살림의원같이 조그마한 의료기관에서도 VIP 신드롬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환자분들은 목소리가 커야 대접받는다고 생각하시는지, 접수 데스크의 직원들이나 간호 스탭들에게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아파서 오신 곳인데 오래 기다려야 하고, 뭔가 일이 잘 안 풀리는 것 같아, 아프고 힘들어서 짜증을 내실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요.

간혹 직원들에게 폭언을 퍼부은 후 아무렇지도 않게 진료실에 들어와서 진료를 받으려고 하시는 분들을 보면, ‘아, 이 분은 의료가 팀플레이라는 것을 잘 모르시는구나. 이렇게 우리들의 감정을 흐트려놓고 긴장감을 높인 상태에서도, 정상적인 의료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시는구나. 나는 그렇게까지 냉정하고 안정적인 사람이 아닌 걸. 벌써 마음이 이렇게 요동치고 있어서 차트의 내용이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오는데 이를 어째...’하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앞에서도 적었지만,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요. 의료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료진의 실수를 줄여서 치명적인 의료사고를 예방하는 것은 너무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의료진만의 책임인 것은 아닙니다. 크리스틴 포래스가 지은 <무례함의 비용>이라는 책을 보면, 무례함은 전염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자신도 무례하게 행동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무례함은 업무 효율을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직접 무례한 행동을 당한 사람 뿐만 아니라 그 상황을 옆에서 보기만 했을 뿐인 사람에게도 업무 효율이 떨어지는 일은 나타난다고 하니, 의료기관 안에서 직원과 환자 모두를 위해 정중한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목소리가 크면 VIP가 될 거라는 생각도 착각일뿐더러, 의료기관 안에서 VIP가 되는 것이 좋은 일도 아닙니다. VIP 신드롬이 항상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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