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 1년 동안 지켜보고 있는데 혹시 정치적 색깔을 가지고 계시나요?”

뜬금없는 문자가 갑자기 도착했다. 문자를 보낸 이는 은평구의원이다. 

1년 동안 지켜봤다는 말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치적 색깔을 갖는다는 말은 무엇일까? 정치적 색깔을 가지면 안 된다는 말인지, 너의 정치적 색깔은 무엇이냐는 말인지, 너의 그 정치적 색깔이 문제라는 말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정치적 색깔이라는 단어도 낯설게 다가왔다.

일상에서는 좀처럼 쓰지 않는 말, 정.치.적.색.깔.

정치와 색깔이라는 단어를 연결 짓고 생각해보니 이건 보통 상대방을 공격할 때 쓰는 말이다. 아, 이 의원님, 뭔가 불만이 있나 보구나, 생각이 정리된다. 이 문자를 다시 들여다보니 ‘기자님, 정치적 색깔을 가지면 안 됩니다’는 말을 강하게 하고 있다. 

일단 ‘정치적 색깔’ 이라는 단어에 동의하기 어렵다. 어떤 정치에 색깔이 있단 말인가? 잘못된 일을 바로잡자고 나선 이들을 빨간색으로 덧칠해 짓밟던 그 순간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아님 특정 정당을 특정 색깔에 비유해 말하는 것인가? 어느 쪽도 동의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시민들을 정치로부터 밀어내는 ‘정치적 색깔’이란 말이 시민들의 선거로 뽑힌 의원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정치인은 시민들을 정치에서 배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참여하게 해야 한다. 정치가 특정 몇몇만을 위한 게 아니라 보다 많은 이들을 위한 장치라는 걸 매순간 실현시킬 의무가 있다. 

민주주의는 집중됐던 권력을 나누고 분산시키면서 완성돼 간다. 특히 지역정치인은 시민들 삶의 현장에 밀착돼 지역 곳곳에 풀뿌리 민주주의를 뿌리내릴 의무가 있는 이들이다.   

우리 삶, 어느 것 하나 정치와 무관한 것이 없는데 정치를 자꾸 우리 주변부로 밀어낸다. 정치는 시민들 삶의 기조를 만드는 핵심인데 많은 이들이 그 핵심을 자꾸 외면하려 한다. 또 누구는 그 외면을 이용하기도 한다. 분명 그런 사람들이 있다. ‘정치적 색깔’을 말하는 것도 이 연장선에 있다. 

만약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니라면 충분히 그런 의도로 읽힐 수 있는 말을 내뱉는 의원의 수준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들여다보자. 조금만 들여다보면 정치는 가슴 뛰는 일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조정하고 합의하고 싸우고 양보하는 모든 과정이 정치다. 합의하고 싸우고 조정한다는 건 저마다 꺼내놓을 이야기가 있기에 가능하다. 물론 이 과정은 불편하고 힘들다. 

‘정치적 효능감’이라는 말이 있다. 개인이 정치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제시하고 활동을 한 후 실제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을 때 느끼는 성취감을 말한다. 이런 효능감을 느끼지 못할 때는 정치에 참여해도 바뀌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냉소주의나 무관심에 빠지게 된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사회에서 나 하나쯤 빠진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소중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지역정치인은 특히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시민들의 의견이 정책과 입법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끔 동네에서 마주치는 풍경이 있다. ‘정치와 무관한 순수 주민들 모임’이라고 소개하기도 하고 ‘우리는 정치색을 띠지 않는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 속에는 정치는 좋지 않은 것, 누군가를 이용하는 것 등의 의미가 담겨있다. 

앞으로는 이런 풍경을 동네에서 만나고 싶다. “우리는 정치의 중심, 시민들입니다. 정치에 아주 관심이 많은 시민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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