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과 관련한 재판에서 고등법원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공개해야 한다는 1심판결을 뒤집고 비공개로 판결했습니다. 결론만 얘기하자면 이 정보는 국민이 알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알 필요가 없다니! 정보공개법에 따르면 모든 공공정보는 공개가 원칙이고, 몇 가지의 정보를 비공개로 제한하고 있을 뿐입니다.

공개할 필요가 없는 정보 같은 건 설명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알권리는 헌법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연결되어있는 기본권입니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이 권리를 제멋대로 재단하고 있습니다.

당초 법원행정처는 사법농단과 관련한 410개 문서 중 일부의 문서를 일부의 사람에게만 공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공개하지 않기로 한 문서들이 무엇인지 이 문서들은 왜 비공개하는지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사법농단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민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공개하지도 않았습니다. 엄연한 알권리 침해입니다.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는 법원행정처가 언론에만 공개했던 사법농단 관련 문서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문건을 공개합니다.” https://www.opengirok.or.kr/4608>>

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자 재판부는 법원행정처가 일부 공개한 건을 두고 ‘국민의 알권리는 충분히 충족되었다’고 말합니다.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할 필요가 크다고 판단되지 않는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알권리에 대해 무지한 것을 넘어서 오만한 태도입니다.  

일반적으로 알권리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권리로 해석합니다. 세계인권선언 제 19조는 “모든 사람은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간섭받지 않고 의견을 가질 자유와 모든 매체를 통하여 국경에 관계없이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접수하고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말 그대로 자유롭게 표현을 할 권리와 표현을 위해 갖추어져야 할 권리들을 말하는데, 알권리는 표현을 위한 전제 조건, 즉 선언문에 명시되어 있는 ‘정보와 사상을 접수하고 전달하는 자유’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알권리는 ‘권리를 위한 권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알권리가 충분히 충족되었다’는 재판부의 말은 맞지 않습니다. 알권리는 얼마만큼 충족되었는지 측량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 충족되거나 완결되지도 않습니다. 만약 알권리가 충족되었다면 그것은 ‘표현’의 내용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 입니다. 하지만 사법농단에 대해 우리가 알게 되었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사법농단 관련 판사 66명 중 50명이 재판이나 징계도 받지 않았다는 내용이거나, 징계를 받은 사람의 명단이나 징계사유를 알 수 없다는 내용 정도 뿐 입니다. 이 내용 어디에서도 ‘충분한’ 알권리의 결과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문건은) 의혹별로 그 내용이 조사보고서에 상세하게 인용되어 있다. 이러한 사정은 이와 중복되거나 업데이트된 84개 파일에도 공통되는바, 이로써 국민의 알 권리는 충분히 충족되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문건 중 일부는)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이 없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재판의 독립, 법관의 독립 또는 법관들의 기본권 침해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사항에 관한 것일 뿐이어서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할 필요가 크다고 판단되지 않는다.”

- 2019누38399 판결문 중에서-

판결문을 읽으며 아무 거리낌 없이 국민의 알권리를 멋대로 재단한 재판부의 머릿속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국민은 나랏일을 몰라도 되는 사람, 아니 모르는 게 마땅한 사람으로 상정하는 권위적인 사고가 아니라면 차마 저렇게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결과에 닿습니다. 그런 시대는 끝난 지 오래인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재판부에게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어떻게 선언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씁니다. 검색 한 줄에라도 걸리라고, 기사 하나라도 더 나오라고. 재판부의 몰염치와 오만을 기억한다고 말입니다.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