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말부터 서울시내 곳곳에서 워크숍, 토론회, 포럼이 진행 중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더니 봄여름 내 갈고 벼렸던 논의와 지식을 갈무리하는 계절도 가을인가 보다. 다 좋은데, 토론회 총량제를 도입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너무 많은 행사와 비슷한 프로그램이 동시다발로 진행되다보니 듣고 싶은 이야기를 줄곧 놓치게 된다. 과거보다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꼭 듣고 싶었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9.26~27일 양일간 열린 ‘2019서울전환도시국제컨퍼런스’다. ‘GDP를 넘어 생태적 전환으로’라는 부제를 달고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서울시장과 서울시교육감은 「생태문명 전환도시 서울」 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선언에서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은 생명과 생태적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를 구현하고 생태문명사회로의 대전환을 위해 근본적이고 담대한 변화를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한다고 하였다.

모든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때 기후위기 대응과 생태적 전환에 집중한다 하였고, 기후위기와 생태문명 전환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하였다. 이와 관련해서 예산 마련을 위해 적극 힘쓰겠다고 하고 특히 서울시교육청은 균형 잡힌 영양 보장과 채식에 대한 선택권이 강화될 수 있는 학교급식체계를 구축하여 생태급식의 시대가 열리도록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중요한 선언이라 생각한다. 실천하지 않는 선언은 그냥 선언일 뿐. 눈을 부릅뜨고 선언이 실행되는지 지켜볼 예정이다.

9.30~10.2일에는 ‘생태문명을 향한 전환’이란 부제를 단 ‘2019한국생태문명회의’ 국제포럼이 진행되었다. 이 포럼 역시 문명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으로의 생태문명을 논하는 자리였다. 그러고 보면 요즘 ‘생태문명’, ‘생태전환’, ‘지속가능성’, ‘회복력’, ‘전환도시’, ‘전환교육’, ‘전환’이란 담론들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기후변화위기 등의 환경위기와 사회·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대안을 찾는 지적 대응의 결과물인 듯싶다.

누구의 진단처럼 어쩌면 우리는 이미 ‘장기비상시대’에 진입했는지도 모르겠다. 기후변화위기, 생물다양성위기, 물위기, 먹을거리(식량)위기 등 환경생태위기가 사회와 경제를 뒤흔들면서 사회·경제위기가 깊어지고 있고 이런 다양한 위기가 우리 삶의 근원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데, 이런 상태라면 지속가능한 문명과 삶이란 게 과연 가능한 것일까? 복합위기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할 때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수많은 진단이 가능하겠지만 결국 근원에는 우리의 잘못된 철학과 가치관에서 기인하는 문제인 건 아니지 묻고 싶다. 달리 해학적으로 표현하자면 ‘현대인은 생태맹’이기 때문이다.

생태맹이란 무엇인가? 글을 해독하지 못하면 문맹이라 하고, 특정한 색을 구분하지 못하면 색맹이라 하며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면 컴맹이라 부르듯이 생태적 감수성이 전혀 없고, 자연과 함께 뭇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부족하며 자립·자족할 수 있는 생태적 지식을 갖지 못한 사람을 생태맹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생태맹인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적어도 생태맹을 극복한 지구인이라면 나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지구의 나이를 1년으로 환산한 지구력으로 따지면 인간이란 생명체는 겨우 5분 전에 지구상에 출몰한 종임을 안다. 그래서 겸손이 본능이다. 그러니 모든 생명을 대할 때 형님과 누님을 대하 듯 한다. 신학자 모세스 마이모니데스가 말했듯이 ‘모든 존재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모든 존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는 명제를 당연히 받아들인다.

두 번째, 지구는 최소 1,000만 여종에 이르는 생물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생명공동체라는 사실을 깊이 이해한다. 서울에만도 최소 5,300여종 이상의 생물이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자연스럽게 더불어 살 수 있는 방법을 우선으로 고민한다.

세 번째, 최소한 자신이 한 달 평균 몇 리터의 물을 소비하고, 몇 킬로와트의 전기를 소비하며 몇 킬로그램의 음식물폐기물과 생활폐기물을 버리고 있는지 알고 있다. 최소한 내 삶이 자연과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정도는 아는 게 상식이어서 삶의 방식 하나하나를 절약과 배려에 기반을 두기 위해 노력한다.

네 번째, 함께 살아가는 야생조류 560여종, 나무 730여종, 풀 2,400여종 중 5%정도만이라도 이름과 생태를 알고 마당과 정원으로 초대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다섯 번째, 오천년 전 광활한 숲을 활보하던 호랑이가 참지 못해 계곡에 눈 오줌을 오늘 아침 내가 생수로 마실 수도 있다는 순환에 대한 감수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물은 사라지거나 줄지 않고 끊임없이 순환하므로 오늘 내가 물을 오염시키면 결국 그 물이 나중에 나를 병들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관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섯 번째, 매일 한 번은 꼭 들리는 화장실 변기 안의 누런 똥이 도시라는 공간 안에서 어떤 관계망을 만들어내는지, 그 관계망이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환경과 생태 그리고 사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천양지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일곱 번째, 인간의 눈으로 보자면 해로운 동물과 식물 그리고 곤충이 존재할 수 있겠지만 생태계 관점에서 보자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나름대로 자기 존재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해충의 대명사인 파리마저도 자연생태계에서 분해자로서, 수분매개자로서, 또 다른 생명체의 먹이공급자로서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파리가 없는 세상이 지금보다 결코 아름답지 않음을 인정한다.

일곱 번째, 지금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위기, 생물다양성위기, 에너지위기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 과학에 기초한 나름대로의 생각과 해결방안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매주 한 차례 이상 지역사회를 좀 더 좋게 만들고자 하는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고, 비영리민간단체를 최소 한 단체 이상 후원하며, 매년 한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는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에 지체 없이 긍정적 답을 내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생태적 감수성과 지식 그리고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며 이런 사람은 지구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지구인이다. 이런 기준으로 봤을 때 나는 생태맹인가, 지구인인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미래를 바란다면 당장 나부터 생태맹을 극복하고 지구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잘 알고 있다. 자,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