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한 추억 하나

80년대 중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지금은 믿기지 않을 정도지만 60학급이 넘는 학교에 전화기는 단 두 대였다. 외부에서 전화가 오면 교무실에서 전화번호를 받았다가 교실에 쪽지로 알려주었다. 급하거나, 공중전화일 경우 교실로 사람이 올라와서 전해주었다. 그러면 그야말로 부리나케 교무실로 뛰어 가서 전화를 받거나, 다시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인터폰이 설치된 몇 년 뒤에는 사람이나 쪽지가 오가는 번거로움은 사라졌지만 4층 교실에서 1층까지 뛰어 내려가는 일은 여전했다.

내가 쓰던 4층 교실. 우리 반에 다리가 불편한 학생이 있었다. 전화를 받기 위해 1층을 내려오르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만 생각했지 그 학생이 절뚝이며 오르내리는 고통은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다. 장애는 오직 당사자의 몫이던 시대였다. 첫 번째 체육 시간에 운동장에 나가지 않고 교실에 남으려 했던 아이. 5학년 때까지 체육 시간에는 항상 교실만 지켰노라고,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말하고 본인도 그게 당연하다는 듯 밖으로 나갈 염두도 두지 않았던 아이. 승강기는 꿈도 못 꾸던 때였지만 여전히 장애를 안고 지금은 마흔 중반이 되었을 그 학생의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생각해 본다.

승강기는 설치되었지만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시 각급학교 승강기 설치율은 72.8%이다.(2012년 12월말)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모든 학교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도록 규정하였다. 다만 1998년 관련법이 제정되기 전에 지은 건물은 예산 확보 후 연차적으로 설치하는 중이다. 이런 이유로 아직 승강기가 설치 안 된 학교가 있다. 하지만 80년대와 비교했을 때 변화가 큰 것은 사실이다. 2019년은 장애인용 승강기 설치율은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환경이 이렇게 변했다고 장애를 가진 학생이 승강기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까? 내면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불편함이 존재한다. 

첫째 사례. 모든 학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초등학교의 경우 설치된 승강기 앞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기 십상이다. ‘이 엘리베이터는 몸이 불편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만 사용합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건강을 위해) 계단을 이용합시다’. 

그런데 이런 문구를 보면서도 승강기를 이용하는 ‘일반’ 학생이 종종 보인다. 아파트나 아파트가 아니라도 승강기가 설치된 건물에서 사는 아이들이라면 자연스럽게 습관이 붙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있다, 그런데 쓰지 말라니!!

두 번째 사례. 친한 친구 두 명이 얘기를 하며 교실로 이동 중이다. 승강기 앞에서 한 아이는 계단으로 가고 한 아이는 승강기 단추를 누른다. 승강기 앞에 적힌 문구대로 몸이 불편하지 않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 계단을 오르는 아이는 자신의 행동을 당연하다고 여길까? 친구와 하던 이야기를 끊고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혼자 승강기를 타는 아이는 또 어떤 생각을 할까?

특별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80년대 내가 가르쳤던 아이는 장애 때문에 특별한 대접을 받지 않았다. 학생들도 그 아이의 장애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승강기가 없으니 당연히 계단을 걸어 다녀야 했고, 다리를 절룩거리니 체육을 안 하면 된다고 여겼다. 앞서 말했듯이 장애는 온전히 혼자 짊어져야 할 짐이었다. 다름이 있어 불편한데도 세상은 그 다름을 전혀 용인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세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어’ 장애인용 승강기를 설치했음에도 ‘일반’ 학생이나 장애를 가진 학생 모두 그 승강기 때문에 불편하다. ‘일반’ 학생은 타서는 안 되는 ‘특별한’ 승강기이기 때문이다.‘ 왜 장애를 가진 사람만 승강기를 타야 하는 거지? 4층까지 걸어가는 게 얼마나 힘든데!’, ‘왜 나만 승강기를 탈 수 있지? 친구랑 같이 타면 안 되나?’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다시 80년대로 돌아가서는 당연히 안 될 일이다. 학생 수가 천 명이든, 오백 명이든 턱없이 부족한 승강기일 망정 한 대라도 ‘일반용’ 승강기가 있다면 불편함의 정도는 어떻게 될까? 주차장에 마련된 장애인용 주차공간처럼, 화장실에 마련된 장애인용 화장실처럼 ‘일반’ 학생들도 사용할 승강기를 설치한다면…. 

장애인용 휠체어가 보행자와 부딪치지 않고 다닐 수 있도록 인도에 충분히 넓은 공간을 만들고 지하철 승강기도 ‘일반용’을 설치한다면…. 그래서 장애인용 시설은 ‘특별한 대접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마련되었다는 인식이 확대된다면…. 이런 인식은 장애를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를 줄 것이다.

문제는 예산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었기 때문에 학교마다 1대 이상의 승강기를 설치했다고 볼 수 없다. 앞서 말했듯 80년대와 지금은 장애를 보는 인식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일이 여전히 녹록하지 않다. 장애를 해결하는 일은 특별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나누어야 할 ‘보편복지’라는 개념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은평구 인권센터 주민 모니터링단이 올 해 ‘보행약자의 공공시설 접근권 보장’을 위해 관내 16개 주민센터의 장애인화장실 운영 현황을 조사하였다. 이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화장실이 없는 한 곳을 제외하고 15곳 중 9곳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나왔다.

① 내부 시설이 충분치 않음 ② 청소도구나 행사물품 보관 장소로 이용하기도 함 ③ 청소 상태 불결함 ④ 화장지 없음. 이러한 결과는 예산이 없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장애인용 시설에 대한 인식이 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은평구 인권위원회 제 5차 정기회의 자료 중)

그나마 장애 정도가 약한 경우는 ‘일반’인과 어울려 살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하지만 장애인 시설이나 학교를 ‘혐오 시설’로 바라보는 인식과 함께 장애를 ‘특별’하게 바라보는 낡은 사고 때문에 중증 장애를 가진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가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내몰린다. 

예산을 책정하고 집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애가 없는 ‘일반’ 사람도 ‘장애’나 ‘장애인용 시설’을 불편하게 느끼지 않는 세상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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