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없는 신문구독으로 언론사 쥐락펴락 여전

언론사를 홍보수단으로 여기는 관행 사라져야 

은평구청 구독신문 중 일부

해마다 되풀이되며 지적된 구정홍보용신문구독이 2020년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구 예산 6억2800만원이 집행될 것으로 보인다. 기대를 모았던 ‘구정홍보용신문예산 구독기준안’도 구독부수 산출기준이 담기지 않은 채 발표돼 짬짜미 예산집행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4일 은평구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들이 ‘구정홍보용신문예산’ 기준마련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서자 은평구청 홍보담당관은 2020년부터 구독기준을 마련해 예산을 집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ABC협회 가입여부, 광고지면 50%이하, 일정기간 은평구 기사로 신문발행’ 등과 ‘서울 동작구·경남지방 등 지역신문 관련조례를 제정한 지자체 벤치마킹, 지역신문사 의견 수렴’ 등을 하겠다는 답변이었다. 수년간 관련 예산기준이 미비한 채 집행되어온 ‘구정홍보용신문’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 공식적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은평구청 홍보담당관은 ‘구독기준안’ 마련이라는 답변을 스스로 무색하게 만들었다. 기준마련을 위해 지역신문사의 의견도 듣고 관련조례도 벤치마킹하겠다고 말했지만 의견수렴을 위한 공개자리나 설명회 한 번 열지 않고 예년과 다르지 않은 신문구독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2020년도 은평구청 신문구독 예산 

은평구청이 밝힌 2020년 신문구독 세부계획에 따르면 은평구청은 6억2천8백만원을 들여 중앙일간지 5종, 지역·광역지 10종 등 총 15개 매체, 4,788부를 구독해 통반장 및 주민자치위원들에게 보급하겠다는 계획이다. 구독기준이 미흡하다며 수년 째 이어진 문제제기가 이어졌지만 구독예산은 오히려 전년대비 2천7백만원 늘었다. 

중앙일간지 구독료는 총 3억8448만원이다. 서울신문이 2억2950만원으로 압도적 1위이며 내일신문 5148만원, 한겨레신문 3780만원, 경향신문 3600만원, 문화일보 2700만원 순이다.

지난해에는 은평구청이 2018년 내일신문 등이 주최하는 ‘다산목민대상’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이후 내일신문에서 발행한 책을 대량구입하고 광고비를 타사에 비해 높게 책정하는 등 특정언론사가 주는 상을 받고 광고로 보답한 것 아닌가하는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은평구청은 2019년에 이어 2020년에도 같은 금액으로 내일신문 구독계획을 밝혔다. 

지역·광역지 구독료는 총 2억2400만원으로 전년대비 792만원이 늘었으며 지역지 5종과 광역지 5종을 포함하고 있다. 지역지 5종은 은평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지역신문이며 광역지로 분류된 5종중에는 전국중앙지로 등록된 신문과 전국주간지로 등록된 신문도 포함되어 있어 신문분류기준 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특정언론사는 지난해 인권비하유머를 싣는 등 지역사회에 물의를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은평구청이 가장 많은 신문구독(연간 3천3백만원)을 하고 있어 행정이 특정언론사와 유착관계를 맺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의심을 사고 있다. 인권도시 은평을 선언하면서 심각한 인권침해내용이 담긴 신문을 구독해서 시민들에게 나눠준 셈이 됐기 때문이다.

# 통반장 신문보급예산 4억은 예산집행근거 미비 

은평구청이 밝힌 신문구독근거

은평구청은 2020년도 신문구독 계획을 제시하면서 ‘지역신문발전지원 특별법, 은평구통반장설치조례, 은평구주민자치회 설치 및 운영조례’를 구독근거로 들고 있다.  

지역신문발전지원 특별법은 지역신문을 발전시키기 위해 지난 2004년 국회를 통과하며 제정됐지만 아직 은평구에는 관련 조례 등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게다가 이 법은 지역신문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지역신문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필요한 시책을 마련할 것을 주문하는 내용이 담겨있을 뿐 홍보를 이유로 신문을 구독하는 내용이나 사례가 전무하다. 관련법안의 취지와 상반된 행정을 펼치면서 관련법안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은평구 통·반장설치조례에서도 ‘통·반장은 각종 잡부금을 면제받으며 직무수행 시 필요한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다’로 편의제공 내용을 규정하고 있을 뿐 4억원이 넘는 예산집행의 근거는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은평구 주민자치회 설치 및 운영조례’개정을 통해 ‘주민자치회 위원들에게 지역신문을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나마 지역신문 구독관련 내용이 담겼으나 이는 주민자치회 관련 조례일 뿐 지역신문 관련 조례도 아니고 구독기준과는 상관없는 내용이다. 

무엇보다 구정홍보를 극대화하기위해 각종 신문을 구독해 통반장 등에게 제공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행정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서울시 25개 자치구를 제외한 지방에서는 대부분 사라진 이 예산이 아직 은평구에 남아있는 것이다. 

# 은평구청 제시 구독기준은 언론사로서 필수조건에 불과

은평구청이 밝힌 신문구독기준

 

은평구청이 제시한 신문구독기준은 지역신문발전 지원과 그에 따른 신문 구독 등의 핵심내용은 빠진 채 ‘한국ABC협회 가입, 광고비중 50%이하, 2년 이상 정상발행’을 제시하고 있다. 한 해 예산 6억2800만원 이상을 집행하면서 그에 맞는 집행근거를 제시하고 투명하게 집행해야 할 행정이 기본 원칙조차 무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은평구청이 제시한 구독기준은 정부나 다른 자치구에서 지역신문발전법에 의거해 우선지원대상자를 선정할 때 필수조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심사 시 기준지표일 뿐 배점도 없는 평가항목이다. 통상 지역신문 지원을 위한 심사조건으로 광고비중 50%이하 등은 필수지원 조건에 해당하며 편집자율권 보장·4대 보험 가입여부 등이 우선지원 조건에 해당한다. 실제 지원대상을 선정하기 위해서는 신문윤리강령 준수정도·공익사업 실시여부·유가부수 비율 등을 점수화해서 평가기준으로 활용한다. 

지역신문지원사업도 기획취재지원·우편발송료 지원사업 등의 역량강화 사업과 지역축제활성화 사업·지역주민참여사업·지역경제활성화 홍보지원 사업 등의 지역성 구현사업 등이며 신문구독사업은 소외계층구독료 지원으로 구정홍보를 목적으로 신문구독은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2020년도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기준에 따르면 행정에서의 신문구독은 일반운영비 중 기본경비에 해당하는 것으로 소규모적 도서구입비를 허용하는 수준이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낮은 은평구에서 해마다 신문구독예산을 늘리는 행정은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 대안마련 시급하다

지난 2001년 경남에서 주민홍보지(계도지) 예산이 사라진데 이어 인근 고양시에서도 2002년 시정홍보신문 예산 6억여원이 없애는 등 전국적으로 행정홍보용신문예산이 사라진 반면 은평구는 아직까지 구정홍보라는 명목으로 신문구독예산을 집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안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기준 없이 집행되는 언론관련 예산은 자칫 언론을 홍보수단으로 전락시켜버리고 언론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른지역언론연대 이영아 회장(고양신문 사장)은 “구정홍보용 신문예산을 받아 신문사를 운영하면 자치단체를 감시하는 신문의 고유기능이 잃어버린다”며 “이 예산은 전액 삭감하고 대신 지역신문육성 조례 등을 제정해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지역신문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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