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가 다쳤는데, 산재처리가 가능하냐는 상담전화를 받았습니다. 당연히 산재처리가 가능하고, 병원을 다니고 있으면 병원 원무과에 가서 신청서를 달라고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당사자가 아니고, 언니일이라고 하며 찾아오겠다고 했습니다. 

인력소개업체를 통해서 첫날 일을 나간 것이라고 합니다. 화장품 케이스를 만드는 공장인데, 케이스 뚜껑에 뭔가를 끼워 넣는 작업인데, 프레스 비슷한 것이 계속 눌러주면서 화장품 케이스 뚜껑에 뭔가를 끼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계가 노후 돼서 자꾸 멈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사장은 왜 자꾸 기계를 멈추냐고 질책을 했습니다. 그러니 옆에 일하는 사람이 

‘그 기계가 문제가 있습니다’며 말을 했는데, 사장은 ‘음 그래’라고 하며, ‘기계가 너무 느려서 그래’하고 기계 속도를 올렸습니다. 

5시 30분까지 일을 하는 것인데, 5시경 그 기계에 말리면서 끼어 재해자의 손가락과 손목이 끼어들어 갔습니다. 3-4분 경과 후 사장이 화장품 샘플을 빼면서 손목이 빠졌고, 잘리지는 않았지만 피가 철철나는 상태였습니다. 재해자는 어쩔 줄 몰라 했고,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멍하니 가만히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장은 ‘왜 그러고 있냐, 업어줄까? 두 다리가 멀쩡하잖아’하며 한동안 빤히 쳐다봤습니다. 재해자가 ‘제가 그럴 상황이 아니잖아요?’라고 말을 했고, 다친 재해자에게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 사장에게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재해자는 이후 병원을 찾아 회사 밖으로 나가는데, 재해 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던 사장은 재해자에게 바로 앞의 병원은 가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재해자는 119를 불렀어야 하는데, 그럴 겨를도 없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고, 왜 사장이 그 병원은 가지 말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일단 그 병원 말고, 빨리 걸어서 인근 어느 한의원에서 초기 치료를 받고, 이후 정형외과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나는 병원에 가서 회사에서 일하다 다쳤다고 말을 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니 재해자는 ‘집에서 문에 찧었다고 했어요’라고 말을 합니다. 왜 그렇게 말을 했냐고 하니, 병원 가기 전에 인력파견회사에 전화를 했는데, 인력파견회사가 그 사고에 대해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하면서 그렇게 답을 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의사는 ‘문에 찧은 것 치고는 많이 다치셨네요’라고 답을 했다고 합니다. 

사고부터 초기 병원 치료까지 재해자는 제조회사는 원망스럽더라도 인력파견회사에서는 본인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병원을 다녀오고 산재처리를 부탁하니, 그렇게는 해줄 수 없다는 답을 듣고 나서야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하는구나’, ‘119에 신고를 했어야 하는데’, ‘왜 의사한테 그렇게 말을 했나’ 하면서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 병원에 다시 가서 ‘원래는 일하다가 다친 것이에요. 옆에 같이 있었던 회사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하라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에요’ 말을 했지만 병원에서 기록을 바꿀 수는 없고, 재해자의 말은 알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에는 산재은폐를 하는 전형적인 모습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산재 사고에 대해서 재해자를 오히려 질책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모습, 일하다 다친 것을 집에서 다쳤다고 말을 하라고 시키는 것, 산재처리가 불가능하거나 할 수 없다고 말 하는 것 등 입니다. 

재해자는 최저임금으로 일을 했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힘겨워서 치료도 빨리 받고 다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산재보상으로 휴업급여(일 못한 기간에 대해서 임금 대신 받는 것)가 있다는 것을 알고 충분히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됐고, 일한 회사도, 인력파견회사도 여러 가지 처벌을 받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었습니다. 

이 사건을 상담하고, 지금까지 산재에 대해서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직도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산재 사고에 대한 대처와 산재신청은 어렵고, 힘든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재 사고가 나면 119를 부르고, 병원에 가면 명확하게 일하다 다쳤다는 것을 말 했으면 합니다. 2020년 안전하게 일하는 한 해를 보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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