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는 사람만 힘들게 하는 게 아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더웠던 여름이 드디어 지나갔다. 

공포 그 자체였던 폭염이 언제 끝날까 하루하루 고통이었는데 막상 지나고 나니 아주 오래전 일처럼 몸의 기억은 벌써 희미해졌다. 아마 1994년의 폭염도 그렇게 잊혀 졌을 것이다. 진정 잊지 않았다면 무엇이든 해보려고 발버둥 쳤을 것이고 기후변화로 인해 심해지는 폭염의 재림이 이렇게 반복되거나 심해지지는 안했을 테니까.

 참으로 어이없는 삶의 연속이다. 지난해 겨울, 한파로 벌벌 떨었다.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그랬다. 이 추위가 빨리 지나가 주길 바랐다. 그러면서 화석연료를 활활 태워 집과 이동수단과 사무실을 데웠었지. 그 만큼 대기에 온실가스를 보탰고 딱 그 만큼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의 가능성과 농도는 더 짙어졌을 테다. 

한파를 견디고 나니 이제 미세먼지 공포로 온 세상이 들썩거렸지. 미세먼지 또한 화석에너지 사용과 자동차를 비롯한 물질세계의 폭력적인 소비문화와 불가분의 관계일 텐데 우린 또 화석에너지로 만든 전기로 공기청정기를 열심히 돌렸었지. 또 그 만큼 대기 중의 온실가스는 늘어났을 테고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은 더욱 사나워졌을 것이다. 

올 여름의 폭염은 그렇게 그 전과 그 전의 우리가 만들어낸 행동의 결과물일 텐데 올 폭염을 견뎌내기 위해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화석연료를 불태웠던가?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작년과 같이 한파가 닥칠지 아님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예전과 같은 기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안다. 어쩌면 폭염 한파 미세먼지 폭염 한파 미세먼지로 이어지는 순환이 완성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지인의 제안처럼 당장 ‘1℃낮추기무엇이라도하자은평위원회’를 만들고 대대적인 전환마을 운동을 추진해야 하는 건 아닌지 조바심이 든다. 기후변화로 인한 한파, 폭염, 집중호우, 가뭄 등의 기상이변은 사람만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 죄 없는 수많은 생명이 위험에 처해있다. 하루에 100종의 생물이 사라지고 있다는 급진적인 주장도 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한다. 북극곰이 처해 있는 상황은 이제 가십거리도 아니다. 북극곰이 먼 나라 이야기라면 우리에겐 구상나무가 사라질 위험에 처한 생물 중 하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구상나무가 심각한 위협에 처해있다는 기사가 여러 번 실렸다.       

구상나무는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그만큼 특별한 나무다. 1907년 제주도 한라산에서 처음 발견된 구상나무는 처음엔 백두산, 시베리아 등 한대성 상록침엽수인 분비나무나 가문비나무와 같은 종으로 알려졌다. 

이어 1915년 미국의 식물학자 윌슨에 의해 한반도에만 있는 희귀종으로 분류돼 ‘구상나무(Abies Koreana Wilson)'란 새 이름과 학명을 얻었다. 학계에서는 1억 2천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난 이후 한반도에 퍼져 내려온 가문비나무나 분비나무가 남부 아고산대 지역에 고립된 채 적응하면서 다른 종으로 분화해 구상나무가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구상나무는 남쪽으로 한라산에서부터 가야산과 지리산을 거쳐 덕유산에서 북한계를 이루고 해발 900~1,000m이상의 고산에서만 분포하고 있다. 구상나무의 수직적 분포는 덕유산(1,350~1,590), 가야산(1,350~1,420), 지리산(1,050~1,900), 한라산(1,000~1,950) 사이의 정상부나 산 능선부의 암석 지대이다. 

사는 곳을 보면 알겠지만 추운 곳에 적응해 살아가는 나무다. 이런 나무가 10여 년 전부터 급속도록 쇠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환경부가 1984년부터 2015년까지 국내에서 나온 관련 연구논문 83편을 분석한 결과, 한라산 구상나무의 평균 고사율은 43.5%, 지리산 구상나무의 평균 고사율은 3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2009년부터 설악산·지리산·덕유산·오대산·소백산 등 5개 국립공원 36개 조사구에서 진행한 ‘아고산대 침엽수림 모니터링’을 통해 겨울철 고온과 봄 가뭄 등 기후변화와 강풍이 구상나무를 말라죽게 하는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기후변화는 구상나무와 같이 독특한 서식환경에 맞춰 진화해 온 생물종에게 특히 위협적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서식환경에 적응하거나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서식지로 이동하지 못하면 사라질 수  밖에 없다.

 구상나무는 참 멋있는 나무다. 키가 20m까지 자랄 수 있다. 나무 모양이 반듯해서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전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나무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 이 땅에서 미국 등으로 아무도 모르게 실려 간 구상나무는 원예종으로 개발돼 가장 수형이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 묘목으로 지금껏 널리 팔리고 있다. 구상나무는 ‘쿠살낭’이 변해 된 말이라는 설이 있는데 쿠살은  제주말로 ‘성게’, 낭은 ‘나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구상나무 숲이 한라산에 있다고 하니 꽤 그럴싸한 이야기다. 

 이렇게 멋진 야생의 생명체 하나가  기후변화로 사라질 위협에 처해 있다. 이 생명체를 위해 우리,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우리와 우리의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연락주시라. 함께 ‘1℃낮추기무엇이라도하자은평위원회’를 만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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