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원두를 드르륵 손으로 갈고 뜨거운 물도 끓인다. 소복하게 갈아낸 원두가루위에 물을 부으면,드립퍼 위에 커피가 빵처럼 부푼다.한껏 숨을 머금은 표면에 다시 물을 붓고,똑똑 떨어지는 소리를 기다린다. 가스렌지 한켠에는 고구마와 떡이 알맛게 구워졌다.구운고구마와 진하게 내려진 커피의 궁합이 좋다.작은 식탁의 반복안에서,'일상적'이라는 안도를 느낀다. 어제와 같은 식탁을 마주할 때,일상이 오늘을 살게하고,삶을 지켜준다.
올해는 일찌감치 바람이 추워졌다.각자의 아파트에 각자의 자동차로 추운거 더운거 모르고 오가는 세상이지만.웃풍드는 집들은 뽁뽁이 비닐 사들고 반신반의로 창문에 붙여볼테고.밖에서 길게 일하는 사람들은두툼한 장갑, 내복, 양말에 손이 간다.큰 건물 히터는 빵빵해도 각자의 사정에 따라 추위의 온도는 다르다.어쩐지 길어질거 같은 이번 겨울이너무 시리지 않았으면,뜨개질 한땀한땀 뜨며 인사를 건네보자.긴 겨울 안녕히 보내자고.
/ 홍시아버지가 근무하시는 아파트에 홍시가 제법 열렸나보다.주민들 손이 안 닿는 가지에 주렁주렁 남겨진 홍시를얼마나 귀하고 신나게 따셨을지.인심 쓰기 좋아하시는 아버지 성격에,그 아파트 여기저기 노나주셨을 생각하면 괜히 즐겁다.아파트 노인정에도 노나 드시라 한 상자 드렸는데,그걸 노인회장이 자기 집에 가져갔단다. 거참.부모님 집에도 한 상자 그득한 홍시.엄마는 자식 서울 가는 길에 깨지지 말라 고이 싸주신다."뭘 그렇게 많이 싸나,"엄마의 수고가 미안한 내 말은 퉁하니 나간다.고이 싸주신 홍시가 하나둘 완숙이 되어아침마다 빼먹는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까?""그래요~""코끼리가 개미를 등에 태우고 걸아가고 있었대,조금 가다가 코끼리가'야, 개미야 너무 무겁다 내려.'했더레.그랬더니 개미가'이게 건방지게, 한 번 더 그런 소리하면 콱 밟아죽인다.'했대,그걸 뒤에서 지켜보던 하루살이가, 뭐라 그랬게?""..., 몰라?!""오래 살고 볼 일이네~ㅎㅎ 재밌지?"콩을 까며 마주 앉아 있으니엄마가 아재 개그를 다 해준다.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필요한 물건이 있어 들렀던 다이소,이젠 3층짜리 스케일이 되어버려서뭐 하나 사려면 꽤 들여다 봐야 한다.천 원짜리 2천 원짜리 물건들의 유혹은 꽤나 도전적이다.있으면 좋을 거 같은 물건들이 어느덧 장바구니에 들어선다.이곳에는 물건을 정리하느라 늘 바쁜 직원 아주머니와, 그 바쁨을 뚫고 물건의 위치를 물어야 하는 손님의 모습이 겹친다.플라스틱이 내뿜는 화학 냄새에 눈과 코가 시리다.딱히 안 사도 되는 것을 골라내고서야 긴 계산줄을 빠져나온다.뭐 하나 사는 게 참 고역스럽다 생각할 즈음,저만치 서 있는 만물상 트럭이 꽤나 생경하다.바구
시원함이 불었으면 골목 사이,빌딩 사이,사람 사이, 너무 달구어져서곁에 다가가기 어려운 날씨에뜨거운 틈을 비집고 시원함아 불어라. 그림 5년차, 자취 10년차. 살림에 재능 있음을 더 확신하고 있는 요즘이라 주부작가를 꿈꾸고 있습니다. 올해 그려둔 작업을 묶어 그림집 을 출간하였습니다. 일상과 사회를 보는 호흡을 이어 은평시민신문에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창작은 말을 거는 행위. 아직 순수를 간직한 사람들에게 그림과 글로 말을 건넵니다.
더위를 피할 길이 없다.창문을 꼭꼭 닫아걸고 바깥에다 버린 열기.석유의 힘으로 냉각되는 서늘한 공기.햇볕까지 튕겨내는 썬팅과의 놀라운 콜라보레이션.버려진 열기는 길거리에 나뒹군다.파란불에 건너가는 횡단보도 옆에서훅훅 내쉬는 차의 날숨이 원망스럽다.아스팔트를 안 그래도 충분히 달구어졌는데나뒹굴던 열기가 사람에게 훅 하니 끼얹져지면저 더위를 피할 길이 없다.안 그래도 폭염이라는데정말이지 피할 길이 없다.일이삼사오육칠팔차선탁 트이고 뻥 뚫어놓으면 뭐하나사람 앉을 벤치 하나 없는 인정머리인데.
토요일 늦은 오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검은 옷 챙겨입고 내려와”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냉이를 넣고 된장을 게워 끓여낸 국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다.할머니가 담그고 엄마에게 주어, 나의 서울방으로 이어진 맛이었다.된장에선 늘 흙 내음이 올라왔다.할머니가 머물 던 시골집 텃밭 냄새였을까.된장도 얼마 안 남아있던데...국물을 입에 떠 넣으며 이 흙 맛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급격한 노화는 봄과 함께 시작되었다.병세보다 노화의 진행이었기에 병원에서 치료받을 부분은 크지 않았다.엄마는 할머니 댁에서 한달반을 함께
/어버이날올해는 무엇을 드릴까 생각하다가예전에 찍어둔 가족사진을 그려보았다.나와 형은 낯선 어린이로 사진안에 또렷하게 존재하는데,아무리 더듬어도 기억과 이야기는 떠오르지 않는다.아버지의 더 젊었을 시절,노동을 하던 고됨보다 가정을 꾸리려는당당한 가장의 모습이 표정에 또렷하다.내가 어린이었을때,어린이날도 어버이날도 사진만큼 서로에게 선명하지 않았을까.학교에서 만든 종이 카네이션을 손에 들고집으로 향했을 어린이이 마음.어디 나들이라도 가자고 했을 상냥함이가장의 내일이자 희망이었을 시절.그때보다 스무해도 더 넘은 지금은,서로 무엇을 좋아